사진과 여행/Museum2009/02/0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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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88년에 18세기에 지어진 병원을 개조해 문을 연 미술관 이다. 내부는 미로와 같은 구조가 특징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중세작품을 전시하는 반면, 소피아 미술관은 1900년대 이후 근·현대 조각의 대표주자인 도널드 저드, 알렉산더 칼더, 에두아르도 칠리다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피카소와 달리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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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에서 Theo Jansen의 Strandbeest 도 한마리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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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 광장에는 널부러져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아 한가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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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Ruiz Picasso <Guernica>. 1937.

당시 피카소는 그 해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전시관의 벽화 제작을 의뢰 받아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국의 비보를 접한 피카소는 한 달 반 만에 폭 7.8m, 높이 3.5m에 이르는 대작을 완성한다. 다만 폭격 그 자체를 묘사하지는 않았다. 목이 베인 군인, 죽은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절규, 부러진 칼을 꼭 쥐고 있는 잘린 팔, 말 아래에 짓밟힌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표현했다.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는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표현했고 여러 각도에서 본 사물들을 단순한 형태로 그리고 흰색, 검정색, 회색, 황토색 등 애도의 뜻을 상징하는 색상만을 사용해 전쟁의 공포,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카소는 비난 받아야 할 것은 공습을 주도한 히틀러 정권만이 아니라 실제로 폭격을 사주한 스페인 프랑코 군부임을 고발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장교가 게르니카의 사진을 가리키며 "당신이 그린 것이냐"고 묻자, 피카소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린 것이오"라고 대답한다.
게르니카는 그 해 파리 만국박람회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순회 전시됐다. 그리고 독재와 탄압, 폭력에 침묵하던 세계의 지성인들이 무력에 항거해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작품은 곧 전쟁의 비참함을 다룬 작품 중 가장 힘이 넘치는 걸작이자,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내전으로 인한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조국 땅을 밟지 않았다. 그는 "인류의 정의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간의 정신이 폭력에 꺾일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허망하게 산화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전문링크

Posted by 진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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