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SFMoMA는 작품찍은 사진이 없다. 적어도 두 번이상은 갔었을 텐데 왜 그럴까. 특별전이야 대부분 촬영 금지라 그런가보다 하는데, 일반전시도 촬영이 안되었던건지 그냥 내가 안찍었던건지 기억이 안나네. 이미지는 SFMOMA 사이트에서 가져오고 그림이나 작가 설명은 대부분 ‘그림읽는 CEO’ 책에서 발췌.
Henri Matisse <Femme au chapeau (Woman with a Hat)>, 1905 (左)
Georges Braque <Violin and Candlestick>, 1910 (右)
색체의 대가 앙리 마티스.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셍, 즉 선이라고 믿으며 색채를 홀대했다. 하지만 마티즈는 데생을 버리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야수처럼 길드령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원색을 사용해 표현했다고 야수파 화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05년 마티스는 위 그림을 파리 전람회에 출품했다. 화가의 회화적 기교나 재능의 잣대인 데생이나 명암을 무시하고 화가에게 금기인 원색의 색채를 사용한 파격적인 그림에 평론가들은 경악하고 관람객들은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하지만 마티스는 전통에 도전해 색채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해방시켰다.
Frida (Frieda) Kahlo <Frieda and Diego Rivera>, 1931
멕시코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창작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화가이다. 프리다는 어릴쩍 소아마비를 앓고 난 후 장애인이 되었다. 18세에는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해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프리다는 후유증으로 인해 죽을때 까지 대부분을 병원 침대에 누워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1931년작 <프리다와 디에고>는 결혼 후 행복감에 젖어 있을 무렵 그린 작품으로 비둘기가 물고 있는 깃발에 행복과 사랑에 관한 글이 적혀있다.
Diego Rivera <The Flower Carrier>, 1935
멕시코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화가 디에고 리베라. 그는 멕시코 미술의 국보적인 존재로 '멕시코 르네상스'를 이끈 벽화예술운동의 선구자였다. 그의 거대한 벽화들은 멕시코의 뼈아픈 역사와 독재정치를 고발하는 민중의 저항정신을 담고 있다. 프리다의 남편.
René Magritte <Les valeurs personnelles (Personal Values)>, 1952
마그리트의 그림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물의 이중성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그리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약 내 그림을 본 관람객이 상식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사람은 화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안 셈이다. 내게 있어 이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 그가 생경하고 낯선 그림을 제작한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옳은가, 혹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고 인간의 억압된 감정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Gerhard Richter <Lesende (Reading)>, 1994
현대 추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Gerhard Richter는 평생 동안 구상과 추상, 리얼리즘과 형식주의의 간극을 자유롭게 넘나든 작업을 한 화가.
Jackson Pollock <Guardians of the Secret>, 1943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과 폴 잭슨 폴록은 이젤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리는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버리고 캔버스 천을 바닥에 펼친 채 작업했다. 바닥에 펼쳐진 캔버스 주위를 돌아다니고, 캔버스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물감을 뿌려댔다. 폴록의 파격적인 제작 방식은 처음에는 사람들의 웃음을 샀다. 1949~50년 물감흘리기인 ‘Dripping 기법’을 미술계에 선보이면서 소동이 벌어졌고 폴록에게 ‘물감 뿌리는 잭 Jack the Dripper’ 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인들은 폴록을 국민화가로 여긴다. 예술가의 격렬한 몸동작과 감정, 생명력을 관람객에게 전달한 화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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