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스페인어: Museo del Prado)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이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되었으며 5,000개 이상의 그림과 2,000개 이상의 판화, 1,000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은 700개 이상이 있다.
3천 개 이상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프라도 박물관은 단연 세계적인 수준의 규모를 자랑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은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에서 갔었던 대부분의 미술관이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기 때문에 작품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래의 이미지들은 모두 wikipedia에서 가져오고 설명은 책에서 가져옴.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특히 유명
Velázquez <Las Meninas>, 1656
탁월한 묘사능력과 빼어난 공간구성이 조화를 이루는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왼쪽에 커다란 캔버스 앞에 붓을 들고 있는 화가가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누구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뒤쪽 벽에걸려 있는 거울속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바로 스페인 국왕과 여왕이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의 어린 소녀는 펠리페 4세의 딸로 당시 다섯살이었던 인판타 마르가리타이다. 그녀의 양쪽으로 두명의 젊은 시녀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 그림의 제목이 탄생하였다. 이처럼 자유분방하고 격식없는 궁중초상은 이 작품의 규모를 고려하면 더더욱 신선한 접근이었다.
Francisco Goya <La maja desnuda>, 1797-1800
Francisco Goya <The Clothed Maja>, 1803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와 <옷을 입은 마야>. 두작품 모두 스페인의 한 재상의 저택에서 발견되었는데, 여러가지 루머가 있지만 그림의 여성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려졌는지는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속설로는 당시 엄격한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 감히 누드화를 내 걸수가 없어서 <옷을 입은 마야>로 <옷을 벗은 마야>를 숨겨두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이 아닌 인간여성을 그린 미술사상 최초의 누드화인데, 그때문에 고야는 결국 이단으로 몰려 교회의 심문을 받았다고 함.
Fra Angelico <The Annuntiation> 1430-1432
피렌체 출신의 프라 안젤리코는 수 많은 <수태고지>를 남겼는데, 이 그림은 피렌체 근교의 피에솔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 내의 성당 제단화로 쓰기위해 그려졌다. 마리아의 기도하는 자세와 무릎위의 성서 및 검소한 방안 풍경, 빛의 근원인 하느님의 손이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내려보내는 모습이 보인다. 구세주의 강림이 선포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 예수가 사람의 몸이 되고 마리아가 잉태한다. 성부 하나님의 형상은 중앙 윗부분 건축물에 표현했다.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1503-1504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동산>은 육욕의 쾌락을 쫓는 삶에 대한 경고를 담은 환성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왼쪽 패널은 마치 동물원과도 같은 진짜 낙원을 보여준다. 이 낙원은 중앙 패널에서 원죄가 태어나는 가짜 낙원으로 바뀐 뒤 오른쪽 패널에서는 지옥으로 변한다. 보쉬는 이 작품을 통해 성적인 탐닉은 인류의 영혼을 위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것으로 보인다. 이시대 사람들은 자연은 문명과 야만, 절제와 정욕같이 끊임없이 충돌한느 개념들로 가득하다고 믿었다.
The Surrender of Breda, 1634-1635, by Diego Velázquez
브레다 함락은 스페인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네덜란드 사이에서 일어난 80년 전쟁의 주요 사건이었다. 브레다는 전략상 요충지로 수개월 동안 포위 공격을 견뎌냈으나 결국 식량이 떨어지면서 투항하고 말았다.총독 유스티누스 데나사우가 함락된 네덜란드 도시 브레다의 성문 열쇠를 스페인 장군 암브로지오 스피놀라에게 바치는 장면 벨라스케스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635년경으로 실제로 브레다가 함락된지 약 10년후의 일. 이 작품이 <창검>이라는 별명을 얻은것은 오른쪽 위편에 보이는 스페인 창검들의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서 유래했다. 이 작품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집무실에 걸기 위해 의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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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인지 영규인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ㅋ ^(^
2009/04/06 21:40 [ ADDR : EDIT/ DEL : REPLY ]블코 링크잇 검색을 통해 알게되어 방문합니다.
블로그코리아의 "그림, 사진 관련 블코채널"에도 글 엮어(트랙백) 나눠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즐겁게 감상하고 행복안고 돌아갑니다.
즐거운 밤되시길 바랍니다~
영규라서 영구에요 ㅎㅎ.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4/22 07:31 [ ADDR : EDIT/ DEL ]